제9호 태풍 '찬홈' 영향으로 한라산에 1천40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졌지만 큰 수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유는 뭘까.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13일 오전 6시까지 한라산 윗세오름(해발 1천673ｍ)에는 많게는 시간당 70㎜가 넘는 강한 빗줄기가 쏟아지며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측정값 기준 1천432.5㎜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이는 서울의 연 강수량 평년값(1천450.5㎜)에 맞먹는 수치다. 한라산 다른 지점에도 진달래밭(해발 1천489ｍ) 1천84㎜, 어리목(해발 965ｍ) 868.5㎜, 성판악(해발 763ｍ) 600㎜ 등의 많은 비가 내렸다. 


제주 산간에는 태풍이나 장마전선 북상 등으로 남쪽에서 올라오는 고온다습한 기류가 한라산과 충돌, 강제 상승하면서 비구름대가 형성돼 이처럼 수 백㎜, 많게는 1천㎜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종종 쏟아지곤 한다.
 

지난해 8월 1일부터 3일 오전 6시까지 윗세오름에는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1천480㎜의 비가 내렸다. 당시 2일 하루 동안만 1천182㎜의 비가 내려 한라산 고지대(윗세오름·진달래밭)에 AWS가 설치된 2002년 12월 이후 일일 강수량으로는 역대 최다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려도 강수로 인한 피해는 많지 않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투수층이 잘 발달해 비가 많이 내려도 물이 잘 빠지는 지질적 특성 덕분이다.
제주에는 전체길이 832.9㎞에 이르는 147개(제주시 66개·서귀포시 81개)의 지방하천과 소하천이 있다.
 

한라산 경사면을 따라 해안까지 이어지는 이들 하천은 산간 등 곳곳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려보내는 도수로 구실을 해 비 피해를 줄인다.
 

제주의 하천은 지질·지형 특성상 평상시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하천이지만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 물이 콸콸 흐르는 보기 드문 모습을 연출하곤 한다.
 

제주시 도심권을 지나는 한천, 병문천, 산지천, 독사천 등 4개 하천에는 2∼4개씩 모두 12개의 저류지가 설치돼 있다.
 

이들 저류지는 큰 비가 내릴 때면 하천으로 흘러든 엄청난 양의 빗물을 최대 147만7천㎥까지 저장해 범람을 막는다.
 

고병련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는 "산간에 비가 많이 내렸지만 제주는 토양 구조상 투수성이 좋아 침수되더라도 수 시간이면 물이 다 빠지는데다 사람이 많이 사는 해안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가 내려 피해가 적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한라산에 정확한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는 관측소를 설치해 재해 예방에 주력하는 한편 산간의 빗물을 그냥 바다로 흘러가게 할 것이 아니라 저장해놨다 수자원으로 활용할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