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 1936년 8월 대홍수와 충주 '목계 나루'
1936년 8월대홍수와 충주 '목계 나루'
목계나루는 충주댐 아래쪽에 위치한 충주시 엄정면 남한강변에 형성된 마을이다. 1948년도 까지 충주지역의 상업 중심지였고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 한강 수운의 관문이었다.
사료에 따르면 한강 상류의 수운의 중심지가 충주 목계나루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한강 수운의 중심지였던 목계나루는
1936년 태풍의 영향으로 8월10일과 11일, 14일 내린 폭우에 충주를 비롯해 제천, 단양, 청주, 괴산은 큰 수해를 입었다.
사망 122명, 실종 38명, 부상 111명 등 281명이 피해를 입었고,
한강물이 불어 목계나루는 이때 거의 파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목계나루는 한강 유일의 항구로 번창했으나 1928년 12월 충북선 철도 개통으로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1936년 8월11일 한밤중에 내린 호우로 가옥 140채가 침수되어 강변마을은 지금의 위치로 이전·복구되었다.
또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8월15일)에 앞서 8월9일부터 내린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316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1928년 12월 철도의 개통과 1936년 8월, 1948년8월대홍수는 목계나루의 운명을 갈라놓는 계기가 되었으며,
1948년 소금배 수운을 끝으로 목계나루는 쓸쓸한 강촌(江村)으로 전락했다.
이후 목계나루에서는 충주를 대표하는 중원문화 민속축제로 '목계별신제'가 해마다 열린다.
중원민속보존회의 '목계나루 뱃소리'는 지난해(2016) 5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금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목계나루를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악극 '목계나루 아가씨'는 뮤지컬로 재탄생해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 서기도 했다.
본인도 직접 출연진과 호흡을 같이하며 눈시울을 적시면서 관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내륙 포구로 수운의 중심지이자 물류와 문화를 서울과 지역에 소통하게 한 문화허브 역할을 했던 목계나루가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한국방재협회 6대회장 김진영배상